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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김내성의 <마인> 책 이야기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총평: 지금의 독자에게는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지만 '의무감으로 읽어야만' 하는 수준도 아님.


한국의 추리독자라면 작품을 읽어보지는 않았어도 그 이름은 들어보았을, '한국 최초의 전문 추리소설 작가' 김내성의 대표작이다.  1939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꾸준히 팔렸으나 한동안 절판되었다가 2009년에 다시 나오게 되었다.  지금의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관례에 따라 문장을 다듬었으나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고는 당시의 어투를 그대로 살렸다고 한다. 

지금도 척박하기 짝이 없지만 당시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한국 추리문학계라는 세계를 정립시킨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현대 독자의 눈으로 보기에는 '원조'의 무게감보다는 어설픔이 더 크게 드러나는 소설이다.  정통파 추리소설을 못해도 열 권 정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최초의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미 범인이 누구인지 찍을 수 있을 것이고(그 정도로 뻔하디뻔한 트릭이다), 그 뻔함을 무마하기 위해 후반부에 등장하는 공범 또한 뻔하다.  반 다인 냄새가 풀풀 난다고 하면 스포일러가 될까(하기야 이 <마인>에서 작중인물이 반 다인의 소설을 언급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또한 소위 '한국형 명탐정' 유불란이 등장하는데, 뤼팽을 탄생시킨 모리스 르블랑에서 그 이름을 따왔듯 뤼팽의 다운그레이드 탐정형 버전 정도 되는 인물이다.  <마인> 속에서는 이미 신문지상에 이름이 오르내릴 정도의 명탐정이지만 뤼팽이 초기 작품들에서 그러듯 '리얼리스트'보다는 '로맨티스트'의 면모가 더 많고 덕분에 노골적으로 말해 여자에게 홀려서 실수도 잦으며, 작품 자체의 한계가 있다 보니 지금의 독자가 보기에 추리력도 그리 뛰어나지는 않다.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신파적인 배경이나 인물 성격은 넘어간다 치더라도, '독자 여러분은 다음이 궁금하시겠지만 여기서 잠시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겨~' 라든가 '~도 바로 그와 같을 게다. ~에 애정을 느꼈을 것이었다' 같은, 마치 옛날 무성영화의 변사 같은 묘사나 설명도 조금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이 발표된 시대를 생각해 보면 <마인>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들은 좀체로 '1930년대 한국의 현실'로 느껴지지 않는다.  분명히 일제 강점기에다 태평양전쟁 때문에 일본이 조선의 고혈을 더욱 가열차게 빨아먹던 시절일 텐데, 일본 사람은 코빼기는 고사하고 터럭 한 올, 아니 이름자조차 나오지 않는다.  경찰서에도 조선 민중을 탄압하는 일본인 형사는 간곳이 없고 조선인 간부와 경찰관들만 우글우글하다(물론 탄압당하는 조선 민중도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여주인공은 이 시대에 무려 서양식 '가면무도회'를 개최하고, 사교계의 내로라 하는 인사들이 갖가지 분장을 하고 거대한 저택에 모여 춤을 춘다(이 인사들 중에도 일본인은 한 명도 없다).  분명 1930년대의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인들이 나오지만 기묘하게 비현실적이다.  마치 '중국'을 배경으로 하지만 실제 중국의 역사와는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무협소설을 보는 것 같다.  책의 뒤쪽에는 해설이 실려 있는데, 여기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두고 <마인>을 '판타지'로 보고 있으며 김내성이 이런 분위기로 소설을 쓴 것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식민지 시대 작가와 작품의 태생적 한계인데, '일제와 그 앞잡이에 맞서는 영웅 유불란 탐정' 따위를 보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고 작가의 고충도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역사성과 현실성이 떨어지니 작품 속에 몰입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다.  500페이지가 조금 못 되는 많은 분량에 신문 연재소설답게 뚝뚝 끊기는 듯한 느낌이 거북했고 위에 언급한 단점들이 괴롭기는 했지만 확실히 매력적인 소설이다.  처음 인터넷으로 주문할 때는 추리독자의 의무감이 앞섰지만, 책을 읽는 동안 가끔은 민망하고 때로는 안쓰럽고 어쩌다 피식거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의무감 때문에 억지로 책장을 넘긴 적은 없었다.  소재나 문체는 낡고 고리타분하지만, 복수극, 미모의 여인에 얽힌 사연, 어려운 수수께끼, 반전과 같은 통속적이고 대중을 잡아끄는 장치들을 배열하는 솜씨를 보면 김내성이라는 작가가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잘 이해하고 능숙하게 사용했다는 느낌이다.  시대의 한계인 고리타분한 줄거리를 걷어내고 들여다보면 그 솜씨만큼은 세련되었다고 해도 좋을 듯.  김내성이 그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나중에 가서는 괴기소설이나 연애소설 작가가 되어버린 것이 아쉽다.

책값은 (인터넷 할인 적용 전) 14,000원인데, 비싸다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장정이나 디자인도 좋다.  위의 이미지에서 뻘건 띠지를 떼내면 표지가 고급스럽고, 무엇보다 두툼한 하드커버지만 속지가 가벼워 손에 들기에 가뿐하다.  뒤에 실린 해설도 <마인>의 진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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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인 서평] 한국 추리소설의 모순 가득한 출발점 2009/08/16 12:40 #

    -저자: 김내성 -출판사: (주)페이퍼하우스 1930년대 후반의 경성. 공작부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무용가 주은몽은 결혼식을 앞두고 주홍빛 망토를 둘러쓴 괴인의 습격을 받는다. 그 이후 은몽의 주변에는 불길한 기운이 감돌고, 발신인을 알 수 없는 협박장이 연달아 날아든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와 결혼할 예정이었던 백만장자 백영호가 한밤중에 피살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필사적으로 수사하는 경찰을 비웃기라도 하듯 범인의 종적은 묘연할...... more

덧글

  • 잠본이 2009/08/16 12:43 # 답글

    아마 '아흑 현실에서도 일본인이 득세해서 지겨운데 내 소설에서까지 보고싶지 않아!'라는 심정이었을지도.(...)
  • Dante99 2009/09/09 14:00 #

    제가 블로그를 방치하느라 답글이 너무나(;;;;) 늦었습니다. 그런 심오한 의미가 있었던 거였군요!

    하지만 덕분에 추리소설이 아니라 대체역사소설이나 환타지를 읽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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