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평가: 이 정도 비주얼이면 스토리 그까이꺼 없어도 됨.
1. 양키 영화인들도 포기한 서부영화 장르를 이렇게 멋지게 살려내다니. 그리고 동양인이 서부영화를 찍고 싶으면 미국 서부영화에 끼어들어 성룡의 '상하이' 시리즈 꼴을 낼 게 아니라(성룡의 '상하이' 시리즈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동양인이 미국 서부 사회에 뛰어들면 어차피 양키의 들러리밖에 안 되니), 이렇게 시간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을 뒤틀어 놓으면 된다는 발상의 전환. 개인적으로 초장에 마구 꼬아놓은 복선을 차근차근 풀어서 보여주는 시나리오를 선호하는 편이라 '이야기가 없다'는 악평을 듣는 이 영화를 봐야 할까 망설였는데, 마감 때문에 하루 밤을 새하얗게 불태우고 조조로 보았음에도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전혀 후회하지 않고 보았다. 이런 영화에서 스토리를 따지는 것은 이소룡 영화에서 스토리를 따지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영화 평론으로 밥벌이를 해야 하는 평론가들이 거창한 꼬부랑 말 써가며 <놈놈놈>을 심각하게 바라보는 것에 동조할 필요 없이 광활한 만주 벌판에서 신나게 말 달리며 총 쏘는 남정네들을 감상하면 그뿐.
2. 박도원의 정우성은 그야말로 기럭지의 승리!! 무릎까지 내려오는 코트에 두툼한 머플러(이건 기나긴 기럭지뿐 아니라 머리도 작아야 착용할 자격이 생김), 긴 장화에 길쭉한 장총, 이 모든 것을 소화할 만한 배우는 정우성밖에 없을 듯. 말을 탔을 때나 장총을 쏠 때 서부영화 속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리 반 클리프 같은 맵시를 뽐낼 수 있는 동양인이 있을 줄이야. 개인적으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정우성이 잘생겼다고는 말 못하겠고(내 타입 아님) 연기력은 전혀 늘지 않았고 게다가 발성이 미숙해서 대사 씹히는 것이 거슬리지만, 말 타고 달리며 장총 한 번 쏘고 휘리릭 돌리고 또 쏘고 하는 그 유명한 장면에서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을 듯한 포스. 그리고 도르래 밧줄을 이용해서 공중을 날아다니며(;) 총싸움을 할 때도 그야말로 간지좔좔. 지금까지 장총 쏘는 폼이 가장 멋진 캐릭터는 <데빌 메이 크라이>의 단테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그 믿음이 좀 흔들리려고 한다...;;
많은 여성팬들이 '말을 부러워하게 될 줄이야....ㅠ.ㅠ' 또는 '뭡니까 저 말은 전생에 지구를 구했나효'를 외치게 한 메이킹 필름의 한 장면. 말을 타고 위험한 장면을 찍어야 할 때마다 말한테 뽀뽀를 해주며 '괜찮아 우리 잘 할 수 있어 힘내자'를 속삭여 주었다나......
영화에서 아예 대놓고 정우성의 기럭지를 강조하며 뽕을 뽑는 장면이 많은데, 정우성에 관심이 없는 나조차도 ㅎㅇㅎㅇ했으니 그 위력은 가히 수소폭탄급일 듯.
니엡. 정우성을 캐스팅했으니 서비스 컷으로 뽕을 뽑아야지 말임돠
3. 박창이의 이병헌, 이 배우는 실제로 보기도 했고 해서 신체비율이 안습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영화 화면에서 그것도 정우성과 함께 비교되니 거의 확인사살 수준. 어차피 안 좋아하는 배우니 지못미를 외칠 것은 없고, 그래도 박창이라는 캐릭터를 잘 살려낸 연기력이 돋보였으니 만족.
눈빛 연기가 아주 후덜덜했음
다크서클과 한쪽 눈을 가린 헤어스타일, 흉터에 검은 양복까지 마치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 너무 전형적인 악당의 모습이었지만 광기 어린 캐릭터를 충실히 소화한 연기력으로 그 전형성을 덮고도 남았다. 다만 목소리가 잔혹한 알콜중독 살인청부업자답지 않아서 입을 열 때마다 좀 깼다고나 할까. 목소리가 너무 평범해서 연기력이 돋보이지 않는 배우라는 느낌을 늘 받는다.
4. 윤태구의 송강호. 아아 뭔 말이 필요한가효 나의 강호 옵하는 언제 어디서나 반짝반짝 빛나는 한국영화의 별인 것을효. 이 영화에서 제일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 문어체(;;)의 대사였는데, 그런 어색한 대사마저도 송강호라는 배우의 입에서 나오니 특유의 억양과 연기력으로 자연스럽게 소화되어 나오는 것을 보고 그저 감탄할 뿐. 송강호가 나오면 그 영화는 무조건 퀄리티에 20%가 추가된다.
연기 변신이 없다고? 한 배우가 이 정도로 확실한 캐릭터 하나를 구축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고 그딴 소리를 지껄이삼?
개인적으로 당사자들은 매우 진지한데 관객들은 웃음을 참을 수 없는 코미디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연기를 해낼 수 있는 송강호라는 배우가 정말로 좋다. 캐릭터가 항상 똑같다느니 짖어대는 인간들의 말은 무시하시고, 본인만의 연기를 계속 펼쳐주시길.
5. 서부영화는 주말의 명화니 토요명화니 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만 접했는지라 몰랐는데, 말떼(;;)가 나오는 추격전이 자동차 추격전보다 훨씬 박진감이 있다. 그야말로 지축을 울리고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말발굽 소리와 질주하는 말들의 근육과 표정, 게다가 배우들(정확히는 정우성)의 기럭지도 실컷 감상할 수 있으니. 자동차 추격전 따위는 들이댈 깜냥이 아니다. 서부영화를 극장에서 보면 이렇구나, 하는 느낌. 확실히 쭉쭉 빠진 말을 탄 쭉쭉 빠진 배우들이 쭉쭉 빠진 총을 휘두르며 싸우는 이런 추격전을 와이드 스크린에 돌비 스테레오 사운드로 감상할 수 있다면 이야기고 플롯이고 중요하지 않을 듯. 영화란 게 원래 '신기한 장면을 보여주는 활동사진' 아닌가.
6. 조조로 이 영화를 봤는데, 사람이 적어서(한 30명 정도) 우스운 장면에서 제대로 웃음보가 터지지 않았다. 관객 꽉 찬 극장에서 다시 한 번 보면 좋겠다.
7. 위에서도 계속 말했지만 스토리가 부실해도 상관 없는 영화였지만, 마지막에 주인공 세 명이 나란히 처하게 되는 상황은 각 캐릭터의 성격이 확실히 구축되어 있지 않으면 설득력이 좀 떨어졌다. 특히 박도원은 그 상황에 왜 뛰어들었나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인터넷에서야 그 동기를 알았는데, 이건 확실히 에러. 적어도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장면에서 캐릭터의 행동이 이해가 될 정도의 정보는 영화 속에 들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도 만족스러웠음. 두 번째로 보게 되면 정말로 광활한 벌판과 총싸움 장면만 집중해서 보고 싶다
감독판 DVD 어여 내주삼
ps. 예고편에서 <다찌마와 리>가 나왔는데, <놈놈놈>을 보고 난 후에는 <다찌마와 리>를 보고 싶은 마음이 1%쯤 줄어들었음. 두 영화 다 공간적 시간적 배경은 대체로 비슷한데, 비주얼 면에서는 확실히 <놈놈놈>의 승리. <다찌마와 리>는 일부러 그렇게 찍었겠지만 화면발이 70년대 한국영화삘이고 액션도 과장을 지나쳐 초현실적(;;;)인데다 스케일이 크지 않아서 <놈놈놈>을 먼저 본 관객의 눈으로 본다면 매력이 떨어질 것 같다. 물론 <다찌마와 리>도 보러 가겠지만, <다찌마와 리>를 먼저 보는 게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